[교황님 미사 강론] 2020년 7월 8일 수요일(연중 제14주간 수요일)
관리자 | 2020-08-04 | 조회 1830
람페두사 방문 기념 거룩한 미사
화답송은 우리에게 언제나 주님의 얼굴을 찾으라고 초대합니다. “주님과 그 권능을 구하여라. 언제나 그 얼굴을 찾아라”(시편 105,4). 이 찾음은 모든 믿는 이들의 삶에서 근본적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의 궁극적인 삶의 목적이 하느님과의 만남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얼굴을 찾는 것은 이 세상에서의 우리 여정이 잘 끝날 것이라는 보증입니다. 그것은 약속된 땅, 우리의 하늘 나라 본향을 향한 탈출(exodus)입니다. 하느님의 얼굴은 우리의 목적지이고 우리가 우리 길을 잃지 않도록 도와주는 이끄시는 별입니다. 제1독서(호세아 예언서 10,1-3, 7-8, 12 참조)에서 호세아 예언자가 묘사한 대로 이스라엘 백성은 길을 잃어 버렸습니다. 그들은 약속된 땅을 더 이상 보지 않았고 죄의 광야에서 헤매고 있었습니다. 풍요, 번영 그리고 부유함이 그들의 마음을 주님으로부터 떠나가게 해 왔고 그대신 그들을 거짓과 불의로 가득 채워 왔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도 또한 이 죄에 대해 면역력이 없습니다. “안락함의 문화, 그것은 우리가 오로지 우리 자신만을 생각하도록 만드는데, 그 안락함의 문화가 우리를 다른 사람들의 울부짖음에 둔감하게 만들고 예쁘지만 아무 실체가 없는 비누 거품 속에서 우리가 살게 만듭니다. 그것들은 결국 다른 사람들에 대한 무관심이 되어 버리는 덧없고 공허한 환상을 줍니다. 정말로 그것이 무관심의 세계화로 이끌기까지 합니다. 이 세계화된 세상에서 우리는 세계화된 무관심에 빠집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고통에 익숙해져 왔습니다. 그것은 나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그것은 나를 걱정시키지 않습니다. 그것은 전혀 나의 일이 아닙니다!”(2013년 7월 8일 람페두사 강론).
하느님의 얼굴을 찾는 우리의 노력은 주님과의 만남, 인격적인 만남, 그분의 끝없는 사랑과의 만남, 그분의 구원하시는 권능과의 만남에 대한 열망에서 생겨납니다. 오늘의 복음 말씀(마태오 복음 10,1-7 참조)에서 묘사된 열두 사도는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님 안에서 그분을 실제로 만나는 은총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들은 대로-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셨습니다. 그분께서는 그들의 눈을 바라보셨고 이제는 그들이 그분의 얼굴을 바라보았고 그분의 목소리를 들었고 그분의 기적을 보았습니다. 은총과 구원의 때, 주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은 선교 사명이 따릅니다. “가서”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렇게 복음을 선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마태오 복음 10, 7). 만남과 선교 사명은 따로 떨어질 수 없습니다.
이런 종류의 예수 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인 만남은 우리에게도 또한 가능합니다. 우리는 삼천년기의 제자들입니다. 주님의 얼굴을 찾는 우리의 노력 속에서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 아픈 사람들, 버려진 사람들, 그리고 하느님께서 우리의 길 위에 놓아 두신 외국인들의 얼굴에서 그분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이 만남은 또한 우리에게 은총과 구원의 때가 되고 사도들에게 맡기신 같은 선교 사명으로 우리를 부릅니다.
오늘은 저의 람페두사 방문 일곱 번째 기념, 제7주년을 기념합니다. 하느님 말씀의 빛 안에서 나는 내가 작년 2월에 “두려움으로부터 해방”이라는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했던 말을 반복해서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타인과의 만남은 또한 그리스도와의 만남이기도 합니다. 그분께서는 친히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문을 두드리는 한 사람, 굶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병들고 감옥에 갇힌 사람이십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와의 만남을 찾고 계시는 분, 우리의 도움을 구하시는 분, 해안의 육지에 닿기를 간청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우리가 어떤 의심도 하지 않도록 우리에게 단호하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오 복음 25,40)
“너희가(…) 해 준 것이” 좋든 나쁘든! 오늘날 이 훈계가 더욱더 시의적절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매일 매일의 우리 양심 수련을 위한 기본적인 출발점으로 삼아야 합니다. 여기서 나는 리비야, 난민 수용소, 난민들이 당해야 하는 학대와 폭력에 대해 생각합니다. 나는 희망의 여정, 구제 활동에 대해 생각합니다. 그리고 거부의 경우들을 생각합니다. “너희가(…) 해 준 것이 (…)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나는 그 섬에서 유럽의 남단에서 7년 전 그날을 기억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저에게 자신의 이야기들을 말했고 그곳에 오기까지 겪어왔던 모든 일들을 말했습니다. 참석한 통역사들이 있었습니다. 한 사람이 끔찍한 일들에 대해서 자신의 언어로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통역사는 통역을 잘 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너무나 길게 말했고 그 통역은 간단했습니다. “음” 나는 생각했습니다. “그들의 언어는 하나의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서 더 많은 단어들을 필요로 해야 하는구나.” 내가 그날 오후에 집으로 돌아왔을 때 환영장소에 에티오피아 사람들의 딸이었던 한 부인– 하느님 그녀를 축복하소서, 그녀는 그 이후 세상을 떠났습니다 – 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그 언어를 알았고 그녀는 우리의 대화를 TV에서 보았습니다. 그녀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들어 보세요, 에티오피아 통역사가 당신에게 말한 것은 그 사람들이 겪었던 고통과 고문의 반의반도 되지 않아요.” 그들이 나에게 “걸러진” 버전을 주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리비아와 함께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걸러진 버전”을 주고 있습니다. 전쟁은 정말로 끔찍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그러나 당신은 사람들이 저 난민수용소 안에서 거기에서 살고 있는 지옥을 상상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저 사람들은 오로지 바다를 건너겠다는 희망으로 왔습니다.
“난민과 이민자들의 위로” Solacium migrantium 이신 동정 마리아님께서는 우리의 세상에 계속 고통을 주고 있는 수많은 불의함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자신의 고향에서 도망쳐 나온 모든 우리 형제 자매들 안에서 우리가 당신 아드님의 얼굴을 발견하도록 도우소서.
번역 : 정진영 프란체스카(최종 번역 날짜와 시간 2020. 7. 10. 14:45)
강론영어원문 -> http://w2.vatican.va/content/francesco/en/homilies/2020/documents/papa-francesco_20200708_omelia-anniversariovisita-lampedusa.html
강론 미사동영상 -> http://w2.vatican.va/content/francesco/en/events/event.dir.html/content/vaticanevents/en/2020/7/8/anniversario-visitalampedusa.html
<소리로 전하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심쿵 미사 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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