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님 미사 강론] 2021년 9월 15일 수요일(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
관리자 | 2021-09-24 | 조회 2204
제52차 성체대회 부다페스트 사목 방문과 슬로바키아 사목 방문의 마침 미사에서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강론
샤슈틴 국립 성모 성지
2021년 9월 15일 수요일
예루살렘의 성전에서 마리아님은 나이든 시메온에게 아기 예수님을 줍니다. 시메온은 그분을 두 팔에 받아 안고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보내어진 메시아를 알아 봅니다. 여기서 우리는 마리아 님이 진정 누구를 위하여 계시는지 봅니다. 어머니께서는
당신의 아드님 예수님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그것이 우리가 성모님을 사랑하고 성모님을 공경하는 이유입니다. 이
샤슈틴 국립 성모 성지에서 슬로바키아 국민들이 믿음과 열심으로 성모님께 서둘러 갑니다. 왜냐하면 어머니께서
우리에게 예수님을 주신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번 사목 여정의 로고는 십자가에 둘러 쌓여 있는
심장 속에 있는 구불구불한 길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마리아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성심으로 우리를 안내하시는
길이시고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당신의 생명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방금 들었던 복음의 빛 속에서 우리는 마리아님을 신앙의 모범으로
묵상하며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신앙의 세가지 차원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여정, 예언 그리고 연민입니다.
첫 째, 마리아 님의 믿음은
자기 자신이 여정을 떠나도록 하는 신앙입니다. 나자렛의 젊은 여인은 천사의 메시지를 들은 후에 당신의 사촌인 엘리사벳을 방문하고 도와 주기 위해서 “서둘러 유다 산악 지방에 있는 한 고을로 갔다”(루카 복음 1, 39). 마리아님은 구원자의 어머니로 뽑힌 것을 특권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즉 그녀는 천사의 방문 후에 당신의 겸손함의 소박한 기쁨을 잃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녀는 수행 되어야할 사명으로 받았던 선물을 체험했습니다. 그녀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라고 재촉 받는다고 느꼈습니다. 그녀는 모든 민족에게 당신 구원의 사랑으로 가 닿으려고 하시는 하느님
그분 자신의 “서두름” 안에 완전히 사로잡혔습니다. 그것이 마리아님께서 당신의 여정을 시작하신 이유입니다. 마리아 님께서는
일상 생활의 안락함 대신에 미지의 여정을 선택하셨고 집의 안락함와 조용함 대신에 여행의 고단함을 선택하셨습니다.
조용한 자기 만족의 경건함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다른 이들을 위한 사랑의 선물로 만드는 신앙의 위험을 선택하셨습니다.
오늘의 복음이 마찬가지로 여정을 떠나시는 마리아님을 보여줍니다. 예루살렘을 향하는 이 때에 그녀는 그곳에서 정배인 요셉과 함께 예수님을 성전에 봉헌합니다. 그녀의 남은 인생은 그분 제자들 중 첫 째 제자로서 골고타 언덕에 이르기까지,
십자가의 발 밑에까지 당신 아드님의 발걸음 안에 있을 것입니다. 마리아님은 결코 여정을
멈추지 않습니다.
여러분, 복되신 동정녀께서는
슬로바키아 국민들에게 신앙의 모범입니다. 여정이 수반되는 신앙, 소박하고
진심 어린 기도로 영감을 받는 신앙, 주님을 찾는 끊임없는 순례. 이
여정을 해 나가면서 당신은 이런 저런 의례적이거나 아주 오래된 전통에 만족하는 소극적인 신앙에 대한 유혹을 극복합니다. 그대신 당신은 자기 자신을 뒤에 두고 가고 당신의 배낭 안에 이 삶의 기쁨들과 슬픔들을 가져가면서 그리고 그렇게
당신의 삶을 하느님과 당신의 형제 자매들을 향한 사랑의 순례로 만듭니다. 이러한 증언에 감사합니다! 그리고 부디 언제나 이 여정을 인내하며 계속하십시오! 멈추지 마십시오! 그리고 나는 다른 것도 덧붙여 말하고 싶습니다. 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멈추지 마십시오”, 교회가 멈출 때 교회는 병들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주교들이 멈출 때 그들은 교회를 병들게 만듭니다. 사제들이 멈출
때 그들은 하느님 백성을 병들게 만듭니다.
마리아님의 신앙은 또한 예언적입니다. 자신의 삶으로 나자렛의 젊은 여인은 인류 역사 속 하느님의 현존, 세상의 논리를 꺾으시어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시고 통치자들을 끌어 내리시는(루카
복음 1, 52 참조) 그분의 자비하신 개입을 가리키는 예언적인
표징입니다. 마리아님은 그분께 울부짖고 메시아의 오심을 기다리는 “주님의
가난한 이들”을 상징하십니다. 그분은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에
의해 선포된 딸 시온(스바니야서 3,14-18 참조)이시고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 임마누엘을 잉태하신 동정녀이십니다(이사야서 7, 14 참조). 티 없이 깨끗하신 동정녀로서 마리아님은 우리 자신의
소명의 아이콘입니다. 왜냐하면 그분같이 우리는 사랑 안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그리스도의 모상이 되라고 부르심을 받기 때문입니다.(에페소서 1,4 참조)
이스라엘의 예언 전통이 마리아님으로 절정을 이룹니다. 왜냐하면 마리아님께서 당신의 태 안에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 완전하고 최종적인 열매를 가져다 주는 사람이 되신
말씀, 예수님을 잉태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루카 복음 2,34).
결코 이것을 잊지 맙시다. 신앙이
삶을 더 기분 좋게 만들기 위한 감미료로 축소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반대를 받는 표징이십니다. 그분께서는 어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나게 하시고 그것이 그분께 굴복하도록 어둠에 빛을 가져다 주시려고 오셨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어둠은 언제나 그분께 대항하여 싸웁니다. 그들의 인생에서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되살아날 것입니다. 그분을 거부한 사람들은 그들 자신의 파멸을 향해 어둠
속에 머물러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에게 그분께서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태오 복음 10, 34 참조). 실제로 그분의 칼은 쌍날칼처럼
어둠에서 빛을 갈라내고 결심을 요구하시면서 우리의 삶을 꿰찌르십니다. 그분의 말씀이 우리에게 요구하십니다. “선택하라!” 예수님 앞에서 우리가 한 발을 두 진영에 담그고 미적지근하게
있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그럴 수 없습니다. 내가 그분을 받아들일
때 그분께서 내 안에 있는 반대들, 나의 우상들, 나의 유혹들을 드러내십니다. 그분께서 나의 부활이 되시고 내가 쓰러질 때 언제나 나를 안아 일으키시는 한 분, 나의
손을 잡아 주시고 나를 다시 새로 시작하게 하시는 한 분이 되십니다.
오늘날 슬로바키아는 그런 예언자들이
필요합니다. 나는 주교님들 여러분에게 촉구합니다. 이 길을 따르는 예언자가
되십시오. 이것은 세상에 향한 적개심과 아무 관련이 없고 세상 안에서 “반대의
표징”이 되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살아 가는 방식으로 복음의 아름다움을
증거하는 그리스도인들. 적개심이 자라나는 곳에서 대화를 엮어내는 사람들인 그리스도인들. 사회가 긴장과 대립을 경험하는 곳에서 형제적 사랑의 모범들. 개인적인 그리고
집단적인 이기심들이 너무나 자주 덮치는 곳에서 환대와 연대의 감미로운 향기를 가져 오는 사람들, 죽음의 문화가
지배하는 곳에서 생명의 보호자와 수호자들.
그 여정의 어머니이신 마리아 님께서
여정을 떠나셨습니다. 마리아님은 또한 예언의 어머니이십니다. 마지막으로
마리아님께서는 연민의 어머니이십니다. 그분의 신앙은 불쌍히 여기십니다. 어머니의
돌보심으로 카나 혼인 잔치에서 포도주가 충분하도록 보증하셨던 (요한 복음 2,1
-12 참조) 마리아 님, “주님의 종”(루카 복음 1, 38 참조)은 어머니의
돌보심으로 카나 혼인 잔치에서 포도주가 충분하도록 보증하셨고 십자가 발치에 이르기까지 당신 아드님의 구원 소명을 함께 나누셨습니다. 골고타에서 그분의 극도의 너무나 큰 슬픔 속에서 그녀 마리아님께서 시메온의 예언을 깨달았습니다.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루카 복음 2, 35). 죽어 가는 당신 아드님-인류의 죄와 병고를 자기 자신에게 지워
놓았던-의 고통이 그녀 자신의 마음을 꿰찔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몸
안에서, 악에 의해서 훼손된 사람으로 고통 받으셨습니다(이사야서 53,3 참조). 우리의 눈물을 닦아주시는 연민의 어머니께서 우리를 위로하시고
그리스도의 명백한 승리를 가리키십니다.
고통의 어머니 마리아께서는 십자가
발치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녀는 그저 거기에 서 있습니다. 그녀는
도망가거나 자기 자신을 구하려고 애쓰거나 자신의 슬픔을 달래는 방법을 찾지 않습니다. 여기에 진정한 연민의
증거가 있습니다. 즉 십자가 아래에 서서 머물러 있는 것. 울면서 그곳에
서 있는 것, 그러나 당신 아드님 안에서 하느님께서 고통과 수난을 변모시키시고 그리고 죽음에 승리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는 믿음으로.
고통의 성모님을 묵상하면서 우리도
연민이 되는 신앙으로, 상처 입고 고통 받으면서 무거운 십자가들을 져야만 하는 사람들과 하나가 되는 신앙으로
우리의 마음을 열게 해 주시기를. 추상적인 채로 머물지 않고 궁핍한 사람들과의 친교 안에서 사람이 되는 신앙. 하느님의 일하시는 방법을 본받는 신앙, 조용히 우리 세상의 고통을 없이하고
구원으로 역사의 땅에 물을 주는 신앙.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주님께서 언제나 여러분 안에 신앙의 멋진 선물로 놀라움과 감사를 보존해 주소서! 그리고
지극히 거룩하신 마리아께서는 여러분을 위하여 언제나 새로이 출발하는 신앙의 은총, 깊이 예언적이고 연민으로
가득 찬 신앙의 은총을 얻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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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말씀을
마무리하며
이제 여러분의 나라를 떠날 시간이
저에게 왔습니다. 이 성찬식에서 나는 대단히 신심 어린 여러분의 수호자 고통의 동정 마리아님 국립을 함께
기념하면서 저를 여러분 안에 오도록 허락해 주시고 여러분 국민들의 헌신적인 포옹 안에서 저의 순례를 마치게 하시는 하느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주교님들, 나는 여러분의 준비와 여러분의 환영 모두에 대해 여러분에게 저의 진심 어린 감사를 전합니다. 나는 슬로바키아 공화국의 대통령과 시 당국자들에게 다시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나는 다른 방법들로 그 무엇보다도 그들의 기도로 이 순례에 협력해 준 모든 이들에게 감사합니다.
나는 여러분을 내 마음에 담고
있습니다. Ďakujem všetkým! [여러분
모두에게 감사합니다!]
(번역: 정진영 프란체스카)
(번역일: 2021. 9. 23. 목요일 22:49)
강론영어원문 -> https://www.vatican.va/content/francesco/en/homilies/2021/documents/20210915-omelia-sastin.html
강론이탈리아어원문-> https://www.vatican.va/content/francesco/it/homilies/2021/documents/20210915-omelia-sastin.html
강론 미사 사진 동영상 -> https://www.vatican.va/content/francesco/it/events/event.dir.html/content/vaticanevents/it/2021/9/15/omelia-sastin.html
<소리로 전하는 프란치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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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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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팟빵
http://www.podbbang.com/ch/1771273(->교황님의 심쿵 미사 강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