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화문]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회사목교구장대리 주교 '제40회 장애인의 날 기념 담화'
관리자 | 2020-04-01 | 조회 1940
‘제40회 장애인의 날’ 기념 담화
편견과 차별없는 세상을 위하여
형제자매 여러분!
부활하신 예수님의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 모두에게 가득하시길 빕니다.
매년 4월 20일은 정부가 정한 ‘장애인의 날’입니다. 1981년부터 이날이 시작되어 올해로 40회째를 맞이했습니다. 그동안 서울대교구는 장애인의 날에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안에서 기념행사(ᄒᆞᆫ자리축제)를 개최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올해는 안타깝게도 코로나 19의 확산으로 모든 행사가 취소되었습니다. 모두가 전염병으로 힘든 이 고통의 시기가 늘 고통받아왔고 고통에 고통이 가중되는 장애인을 다시 한번 돌아볼 수 있는 은총의 시기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우리나라가 40년째 장애인의 날을 기념하고 있지만, 여전히 개선되지 못한 문제는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입니다. 장애인을 동정이나 시혜의 대상으로 여기는 편견을 버려야 합니다. 그러한 편견은 장애인을 불편한 대상으로 느끼게 만들고, 그들이 내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머무르기만을 바라게 합니다. 2018년 평창에서 장애인 동계 올림픽이 열리기 불과 몇 달 전, 장애인 특수학교 설립에 반대하는 주민들 앞에서 무릎을 꿇고 눈물로 호소하던 장애 학생 부모님들의 모습이 지금도 기억에 뚜렷합니다. 우리 사회가 여전히 장애인을 ‘함께 어울려 살아가야 할’ 동료, 형제, 이웃으로 받아들이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을 드러내 준 사건이었습니다. 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사람이 누릴 수 있는 당연한 혜택에서 제외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차별입니다. 그런데 장애인에 대한 편견은 쉽게 차별로 이어집니다.
장애인을 위한 저상버스가 늘어나고, 길거리에 점자블록이 깔리고, 신호등에 시각장애인을 위한 음성서비스가 설치되어 있지만, 정작 그것을 이용하는 장애인을 보기는 쉽지 않습니다. 공공의 생활영역에서 자신의 역량에 따라 비장애인과 어울려 노동하는 장애인들을 보기도 쉽지 않습니다. 서구 선진국의 장애인에 대한 성숙한 시민 의식과 실천을 따라가려면 우리가 더 많이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모범에 따라 사회에 모범을 제시해야 할 교회의 모습은 어떨까요? 성당에서도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사회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회보다 더 못한 측면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등록 장애인은 총 258만여 명입니다(2018년 통계청 자료). 그리고 2018년 12월 말 기준 서울시의 등록 장애인 수는 39만 2천여 명(서울시 전체인구의 4.0%)입니다. 그렇다면 서울대교구의 모든 본당마다도 평균 4%의 장애인 신자가 있다고 가정할 수 있습니다. 신자가 2,000명인 본당이라면 적어도 80명의 장애인이 있다는 뜻입니다. 적지 않은 인원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본당에서 그 정도로 많은 장애인이 미사에 오는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장애인이 성당에 나오기 어려운 여건 때문이 아닐까요?
단순히 장애인 편의시설이 부족하거나 불편하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장애인이 성당에서 느끼는 심리적, 정서적 불편함을 더 중요한 이유로 꼽을 수 있습니다. 바로 장애 그 자체보다 장애인을 대하고 바라보는 사람들의 편견이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어울리며 ‘평범한 이웃’이 될 수 있도록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서 본당에 나오지 못하고 있는 장애인 교우를 찾아 나서고, 이들이 본당 내에서 불편하지 않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다방면의 노력을 기울이고 이를 실천하는 일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성당이 어떤 점에서 장애인들에게 불편한지, 그 사정을 살피고 개선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장애인 편의시설이 장애인을 위한 ‘특별한’ 혜택이 아니라 ‘당연한’ 권리라는 인식을 모두가 공유하고 자연스럽게 경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장애를 장애로 느끼지 않을 수 있을 만큼 자연스럽게 서로 어울려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인식과 실천을 할 수 있으려면 무엇보다도 가정에서의 교육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가톨릭교회는 가정의 구성원들이 장애인과 같은 사회적 약자를 돌보고 책임지는 일을 배울 수 있도록 살아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가톨릭교회 교리서 2208항; 간추린 사회교리 246항 참조)
서울대교구에는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성라파엘사랑결성당’과 청각 및 언어장애인들을 위한 ‘에파타성당’이 있습니다. 에파타성당은 2019년에 자체 성전을 신축하고 봉헌식을 거행했으며 ‘준본당’에서 ‘본당’으로 승격되었습니다. 기쁘고 감사할 일입니다. 하지만 장애인과의 연대와 나눔의 과제를 이 두 본당에만 떠밀어 버려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오히려 이 두 본당은 비장애인 신자들에게 장애인의 존재를 끊임없이 상기시켜주는 상징입니다. ‘성라파엘사랑결성당’이나 ‘에파타성당’까지 직접 갈 수 없는 수많은 장애인과 함께 살아갈 책임과 사랑의 의무는 여전히 모든 본당에게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모든 장애인이 각자의 소속 본당에서 불편 없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교구의 모든 본당이 하나같이 제2, 제3의 성라파엘사랑결성당과 에파타성당들이 될 날을 꿈꾸고 싶습니다.
때마침 코로나 19 감염병 관련 기자회견마다 수어 통역이 텔레비전 화면에 등장했습니다. 수어 통역 중계는 의사소통을 위해 수어를 사용해야만 하는 청각 및 언어장애인의 존재를 상기시켜주었습니다. 본당 미사가 중단되어 많은 신자가 가톨릭평화방송(CPBC)의 매일 미사로 신앙의 갈증을 달래고 있습니다. 드디어 주일미사 방송에도 수어 통역이 등장했습니다. 큰 성과입니다. 이왕이면 힘이 좀 더 들더라도 수어 통역 중계가 평일 미사로까지 확대되면 좋겠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 사회와 교회 안에 아직도 존재하는 장애인에 대한 모든 종류의 직·간접적 차별에 대하여 우리의 무관심을 뉘우칩시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은 장애인도 “천부적이고 신성하며 침해할 수 없는 권리에 상응하는 온전한 인간 주체”(노동하는 인간 제22항)로서 존엄과 위대함을 드러낸다고 가르치셨습니다. 따라서 장애인에 대한 모든 차별을 제거하고 “실질적이고 적절한 대책을 마련하여 장애인의 권리를 증진하여야 한다.”(간추린사회교리 148항)는 교회의 가르침을 개인과 공동체 차원에서 어떻게 실천할 수 있는지 함께 고민하고 더욱 열심히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코로나 19로 고통받고 있는 모든 사람과 특별히 장애인들에게 생기와 활력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장애인이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수고를 아끼지 않으시고 함께 해주시는 모든 분께 감사와 존경을 드리며 부활하신 주님의 강복을 빕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회사목담당 교구장대리
유경촌 디모테오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