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바로가기 본문바로가기

교회의가르침

HOME > 자료모음 > 교회의 메시지

[교황님 미사 강론] 2021년 5월 23일 주일(성령 강림 대축일)

관리자 | 2021-06-02 | 조회 2081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강론

 

 

 

성 베드로 대성당

 


성령 강림 대축일 - 주일, 2021 5 23

 

 

 

내가 아버지에게서 너희에게로 보낼 보호자, 곧 아버지에게서 나오시는 진리의 영이 오시면……” (요한 복음 15:26). 이 말씀과 함께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에게 성령, 그 최고의 선물, 선물 중의 선물을 보내 주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그분께서는 성령님을 설명하시면서 특이하고 신비한 단어를 쓰십니다. 바로 파라클리토[Paraclito(Paraclete)]입니다. 오늘 이 단어에 대해서 묵상합시다, 이 단어는 많은 의미들을 갖고 있어서 번역하기 쉽지 않습니다. 본래 그것은 두 가지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 위로자와 보호자.

 

 

 

파라클리토는 위로자이십니다. 우리 모두는, 특히 현재 팬데믹으로 겪고 있는 것들과 같은 어려움의 때에, 위로를 찾습니다. 그러나 자주 우리는 오로지 세속적인 위로들, 빨리 사라지는 덧없는 위로들에만 의지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천상의 위로, 성령님을 주시는데 그분께서는 가장 좋은 위로자이십니다(부속가). 무엇이 다릅니까? 세상의 위로들은 진통제와 같습니다. 그것들은 잠깐 순간적인 위안을 줄 수 있지만 그러나 우리가 내면 깊이 갖고 있는 병을 고치지는 못합니다. 그것들은 우리를 달래 줄 수는 있지만 그러나 우리를 마음 깊은 곳에서 치유하지는 못합니다. 그것들은 피상적으로 감각의 차원에서 작용하지만 그러나 좀처럼 우리의 마음을 어루만지지 못합니다. 오로지 우리가 있는 그대로 사랑 받는다고 느끼게 만드시는 어떤 분만이 우리의 마음에 평화를 주실 수 있으십니다. 성령님, 하느님의 사랑께서 바로 그렇게 하십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내면으로 내려 오십니다. 영으로서 그분께서 우리의 영 안에서 활동하십니다. 그분께서 마음 안으로내려오십니다, “영혼의 기쁜 손님”(부속가). 그분께서는 바로 하느님의 사랑이신데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홀로 외로운 이들에게 현존하심은 그 자체가 위로의 원천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자매님, 사랑하는 형제님, 만약 당신이 고독의 어둠을 느낀다면, 만약 당신이 당신의 내면 안에 있는 장애물이 희망으로 가는 길을 막는다고 느낀다면, 만약 당신의 마음에 곪아 터진 상처가 있다면, 만약 당신이 출구를 찾지 못한다면 그렇다면 당신의 마음을 성령께 여십시오. 성 보나벤투라는 우리에게 말합니다. “시련이 더 큰 곳에서는 그분께서 더 큰 위로를 가져다 주십니다. 그것은 일이 잘 될 때는 우리에게 위안을 주고 아첨하지만 잘되지 않을 때는 우리를 조롱하고 비난하는 세상의 것과 같지 않습니다”(Homily in the Octave of the Ascension). 그것이 세상이 하는 짓입니다, 특히 적대적인 영, 악마가 하는 짓입니다. 먼저 그는 우리에게 아첨하고 우리가 천하무적이라고 느끼게 만듭니다(왜냐하면 악마의 감언이설이 우리의 허영심을 먹여 키우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나서 그는 우리를 내동댕이치고 우리가 실패자라고 느끼게 만듭니다. 그는 우리를 가지고 놉니다. 그는 우리를 넘어뜨리기 위해서 모든 일을 하지만 부활하신 주님의 성령께서는 우리를 일으켜 세우고 싶어하십니다. 사도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그리스도를 부인했기 때문에 그날 아침에 외로웠고 갈피를 못 잡으며 닫혀 있는 문 뒤에 웅크리고 두려움 속에서 살면서 그들의 나약함과 실패와 죄에 짓눌려서 그들은 외로웠습니다. 그들이 예수님과 함께 보냈던 수년이 그들을 변화시키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원래 있었던 모습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들은 성령을 받았고 모든 것이 바뀌었습니다. 문제들과 실패들이 남아 있었지만 그러나 그들은 더 이상 그것들이 두렵지 않았고 그들에게 적대적인 누구도 두렵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내면에서 위로를 느꼈고 그들은 하느님의 위로가 흘러 넘치기를 원했습니다. 예전에 그들은 두려워했습니다. 이제 그들의 유일한 두려움은 그들이 받은 사랑을 증언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뿐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예언하셨습니다. “그분께서 나를 증언하실 것이다. 그리고 너희도 (…) 나를 증언할 것이다(요한 복음 15,26-27).

 

 

 

한 걸음 더 나아갑시다. 우리도 또한 성령님 안에서 증언하도록 파라클리토 위로자가 되도록 부름 받습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그분이 가져다 주신 위로의 몸이 되라고 청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습니까? 위대한 연설을 함으로써가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 가까이 다가감으로써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진부한 말이 아니라 기도와 친밀함으로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친밀함과 동정과 다정한 사랑이 언제나 하느님의 트레이드마크라는 것을 기억합시다. 파라클리토께서는 오늘날이 위로의 시대라고 교회에 말씀하고 계십니다. 오늘날은 이교와 싸우기 보다 오히려 더욱 기쁘게 더 많이 복음을 선포하기 위한 시대입니다. 세속화의 드라마를 한탄하기 보다 오히려 부활하신 주님의 기쁨을 가져다 주기 위한 시대입니다. 세속화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사랑을 부어주기 위한 시대입니다. 규칙과 법규들을 설득하기 위한 때라기보다 오히려 더욱 자비를 증언하기 위한 때입니다. 파라클리토 성령님의 시대입니다! 파라클리토 성령님 안에서 마음의 자유의 시대입니다. 

 

 

 

파라클리토 성령께서는 또한 보호자이십니다. 보호자께서는 그분들이 오늘날 하시는 일들을 예수님의 시대에는 하지 않으셨습니다. 피고인들을 대신하여 말씀하시기 보다는 그분들은 그저 그들의 옆에 서서 그들이 자기 자신의 변호를 위해서 쓸 수 있는 논거들을 주셨습니다. 그분은 진리의 영”(요한 복음 15,26)이시기 때문에 그것이 파라클리토 성령께서 하신 일입니다, 그분께서는 우리를 대신하시는 것이 아니라 느낌과 생각들을 불어 넣으심으로써 악의 기만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십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억지로 하게 하지 않으시고 그토록 사려 깊게 하십니다. 그분께서는 제안하시고 강요하지 않으십니다. 기만의 영, 악마는 반대의 일을 합니다. 그는 우리에게 억지로 시키려고 합니다. 그는 우리가 항상 악의 유혹과 유도에 굴복해야 한다고 생각하도록 만들고 싶어 합니다. 파라클리토 성령님 우리 보호자의 전형적인 세가지 제안들을 받아 들입시다. 그것들은 오늘 날 너무나 퍼져 있는 세 가지 유혹들에 대한 본질적인 세 가지 해독제들입니다.

 

 

 

성령께서 주시는 첫 번째 충고는 현재를 살아라라는 것입니다. 현재, 과거나 미래가 아닌. 파라클리토 성령께서는 우리 자신을 과거에 대한 회상이나 원한 또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나 두려움에 마비되도록 놓아 두라는 유혹에 반대하여 오늘이 제일임을 확언하십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지금 현재의 은총을 일깨워주십니다. 우리에게 더 좋은 시간은 없습니다. 지금, 여기 그리고 지금이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그리고 우리의 삶을 선물로 만들 수 있는 유일한 한번뿐인 시간입니다. 현재를 삽시다!

 

 

 

성령께서는 또한 우리에게 전체를 보라고 말씀하십니다. 전체, 부분이 아닌. 성령께서는 고립된 개인들을 만드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교회로 우리 카리스마의 넓은 다양성 안에서 결코 획일성이 아닌 일치로 우리를 만드십니다. 파라클리토 성령께서는 전체가 제일임을 확언하십니다. 성령께서는 그곳 전체 안에서 공동체 안에서 일하시며 새로움을 가져다 주시는 것을 좋아하십니다. 사도들을 바라봅시다. 그들은 모두 매우 달랐습니다. 예를 들어 그들 중에는 로마인들에게 협력했던 세리 마태오 그리고 로마인들과 싸웠던 열혈당원이라 불리는 시몬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반대되는 정치적 이념을 갖고 있었고 세상에 대한 다른 비전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일단 성령님을 받자 그들은 제일의 우선권을 그들의 인간적인 관점들에 주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계획이신 전체에 주는 것을 배웠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성령님께 귀 기울여 듣는다면 우리는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 전통주의자와 개혁자, 우익과 좌익에 관심을 두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들이 우리의 기준이 될 때 그럴 때 교회는 성령님을 잊어버려 왔습니다. 파리클리토 성령께서 우리를 일치로, 화합으로, 다양성의 조화로 밀어 주십니다. 그분께서 우리가 우리 자신을 한 몸의 지체들로 서로 서로의 형제 자매들로 보게 만드십니다. 전체를 봅시다! 원수는 반대가 되는 다양성을 바라고 그리하여 그는 그것들이 이데올로기가 되도록 만듭니다. 이데올로기들에 대해 아니오, 전체에 네 라고 말하십시오.

 

 

 

성령님의 세 번째 충고는 하느님을 너 자신의 앞에 두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영성 생활에서 중대한 결정적인 단계인데 그 영성 생활은 우리 자신의 장점들이나 성취들의 총합이 아니라 하느님에 대한 겸손한 열림입니다. 성령께서는 은총이 제일임을 확언하십니다. 오로지 우리 자신을 비움으로써 우리는 주님을 위한 자리를 마련합니다. 오로지 우리 자신을 그분께 내어드림으로써 우리는 우리 자신을 발견합니다. 오로지 마음이 가난해 짐으로써만 우리는 성령 안에서 부유해 집니다. 이것은 또한 교회에도 해당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노력으로는 아무도 구원하지 못합니다, 우리 자신조차도 구원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프로젝트들과 우리의 조직 기구들과 개혁을 위한 우리의 계획들에 우선권을 준다면 우리는 오로지 효과와 효율성만을 염려할 것입니다, 우리는 오로지 획일적인 수평적인 조건들 안에서만 생각할 것이고 결국 우리는 아무 열매도 맺지 못할 것입니다. “-주의(ism)”는 분열시키고 갈라 놓는 이데올로기입니다. 교회는 사람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인간의 조직이 아닙니다, 교회는 성령님의 성전입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의 불을 세상에 가져다 주셨고 그리고 교회는 은총의 기름 부음으로, 은총의 기름 부음으로 거저 받은 선물로, 기도의 힘으로, 소명의 기쁨으로 그리고 무장 해제된 가난의 아름다움으로 개혁됩니다. 하느님을 첫째 자리에 놓읍시다!

 

 

 

성령이시여, 파라클리토 성령이시여, 우리의 마음을 위로하소서. 우리를 세상 앞에서 당신 위로의 선교사로, 당신 자비의 파라클리토가 되게 하소서. 우리의 보호자, 영혼의 감미로운 조언자시여, 우리를 하느님의 오늘에 대한 증언자로, 교회와 인류를 위한 일치의 예언자로, 그리고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새롭게 하시는 당신 은총을 딛고 서 있는 사도가 되게 하소서.

 

 

 

(번역 2021. 5. 29. 토요일 18:32)

 

 

 

강론영어원문 -> https://www.vatican.va/content/francesco/en/homilies/2021/documents/papa-francesco_20210523_omelia-pentecoste.html

 

강론 미사 사진 동영상 -> https://www.vatican.va/content/francesco/en/events/event.dir.html/content/vaticanevents/en/2021/5/23/pentecoste.html

 

 

 

 

 

 

 

<소리로 전하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심쿵 미사 강론>

 

1. 마리아 사랑넷 https://m.mariasarang.net/bbs/bbs.asp?index=bbs_sermon_pope (->신앙생활->교황님 미사 강론)

 

2. 팟빵 http://www.podbbang.com/ch/1771273(->교황님의 심쿵 미사 강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