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님 미사 강론]2021년 6월 29일 화요일(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관리자 | 2021-07-09 | 조회 2058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새로운 대주교들을 위한
봉헌된 팔리움 축복과 거룩한 미사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강론
성 베드로 대성당
2021년 6월 29일 화요일
복음의 위대한 두 사도 그리고 교회의 두 기둥. 베드로와 바오로. 오늘 우리는 그들의 기억을 기념합니다. 믿음의 두 증인들을 더 자세히 살펴 봅시다. 그들 이야기의 핵심은
그들 자신의 재능들과 능력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중심에 그들의 삶을 바꾸었던 그리스도와의 만남이
있습니다. 그들은 그들을 치유하고 그들을 해방시킨 사랑을 경험했습니다.
그들은 그때 사도가 되었고 다른 이들의 해방을 위한 사목자가 되었습니다.
베드로와 바오로는 그들이 해방되었기 때문에 자유로웠습니다. 가장 중요한 이 점을 묵상합시다.
베드로, 갈릴레아 출신의
어부는 예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 덕분에 무엇보다 먼저 자신이 무능하다는 느낌과 실패의 쓴 경험에서 해방되었습니다.
노련한 어부였지만 여러 번 한밤중에 그는 아무것도 잡지 못하는 절망감의 비통함을 맛보았고(루카
복음 5,5. 요한 복음 21,5 참조) 그리고 그의 빈 그물을 보면서 노를 젓도록 유혹을 받았습니다. 성급하고
강인하지만 베드로는 자주 두려움에 굴복했습니다(마태오 복음 14,
30 참조). 주님의 열렬한 제자이지만 그는 계속해서 세속적인 기준들로 생각했고 그래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미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데 실패했습니다(마태오 복음 16,22). 그는 예수님을 위해서 자기의 목숨을 내어 놓을 준비가 되었다고 말한 다음에도 그가 그리스도의 제자들
중에 하나였다는 한낱 의심이 그를 스승님을 부인하는 공포로 이끌었습니다(마르코 복음 14,66-72).
예수님께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를 사랑하셨고 기꺼이 그를 두고
위험을 받아들이셨습니다. 그분은 베드로가 포기하지 않도록 용기를 북돋아 주셨고, 다시 한번 그의 그물을 내리도록, 물 위를 걷도록, 자기 자신의 연약함을 받아들이는 강인함을 발견하도록, 십자가의 길에서
당신을 따르도록, 그의 형제 자매들을 위해서 자기 목숨을 바치도록, 그의
양떼들을 잘 돌보도록 용기를 북돋아 주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를 두려움에서 해방시키셨고
오로지 세속적인 관심사들에 기초한 계산들로부터 해방시키셨습니다. 그분께서 그에게 모든 것의 위험을 받아들일
용기를 주셨고 사람 낚는 어부가 되는 기쁨을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의 믿음의 형제들에게 힘을 북돋아
주라고 부르신 것은 베드로였습니다(루카 복음 22, 32 참조). 그분께서 그에게 – 우리가 복음에서 들은 대로 – 주님과의 만남으로 이어지는 모든 문들을 여는 열쇠들을 주셨고 매고 풀 수 있는 권한을 주셨습니다. 즉, 그의 형제 자매들을 그리스도와 매고 그들 삶 속에 있는 매듭들을
푸는 권한(마태오 복음 16,19 참조).
그 모든 것들은 – 우리가
제1독서에서 들은 대로 – 베드로 자신이 오로지 해방되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그를 수인으로 붙들어 놓았던 쇠사슬들이 떨어져 나갔고 그날 밤 이스라엘 인들이
이집트의 속박에서 해방될 때처럼 그는 빨리 일어나라고 들었고 나가기 위해서 허리띠를 매고 신을 신었습니다. 주님께서
그렇게 그의 앞에 있는 문들을 열어 주셨습니다(사도행전 12,7-10
참조).여기서 우리는 열림의 역사, 해방의 역사, 떨어져 나간 쇠사슬들의[역사, 속박의
집으로부터의 탈출의 역사를 봅니다. 베드로는 파스카를 경험했습니다. 주님께서
그를 풀어주셨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또한 그리스도가 가져다 주신 자유를 경험했습니다. 그는 종살이의 가장 억압적인 형태, 자아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의 이름인 사울에서 “작다”를 의미하는 바오로가 되었습니다. 그는 또한 자신을 자기 조상들의
전통을 열성적으로 지키는 사람과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잔인한 박해자로 만들었던 종교적인 열성에서 해방되었습니다(갈라티아서 1, 14 참조). 해방됨. 하느님의
사랑과 형제 자매들의 사랑에 자기 자신을 열도록 만들기 보다 오히려 형식적인 종교 의식과 고집스럽게 전통을 지키는 일이 그를 완고하게 하여 왔었습니다. 그는 근본주의자였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를 이것에서 해방시키셨습니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그의 선교 사명을 더 크게 열매 맺게 해 준 역경과 연약함을 그가 모면하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즉 사도직의 중압감, 육신의 병(갈라티아서 4,13-14 참조). 폭력과 박해와 난파와 굶주림과 목마름 그리고
그가 직접 우리에게 이야기하듯이 고통스러운 몸의 가시(코린토 2서 12,7-10 참조).
바오로는 그렇게 “하느님께서는
강한 것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약한 것을 선택하셨습니다”(코린토 1서 1,27)라고 깨닫게 되었고 우리가 우리에게 힘을 주시는 그분을
통해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필리피서 참고
4,13) 그리고 그 무엇도 우리를 그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로마서 8,35-39 참고). 이러한 이유로 그의 삶 끝에서 – 우리가 제2독서에서 들은 것 같이
- 바오로는 우리에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내 곁에 계시면서” 그리고 “주님께서는 앞으로도 나를 모든 악행에서 구출하시고”(티모테오 2서 4, 17). 바오로는
파스카의 체험을 했습니다. 주님께서 그를 자유롭게 해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교회는
이 믿음의 두 거인들을 바라 보며 오로지 먼저 그들 자신이 그리스도의 만남으로 인해서 해방되었기 때문에 이 세상 안에서 복음의 힘을 자유롭게 하는
두 사도들을 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심판하거나 치욕을 주지 않으셨습니다. 그대신 그분께서는 애정과 친밀함으로 그들의 삶을 나누셨습니다. 그분께서는
그분의 기도로 그들을 지탱해 주셨고 그리고 때때로 그들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나무라셨습니다. 베드로에게
예수님께서 부드럽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의 믿음이 꺼지지 않도록 너를 위하여 기도하였다.” (루카 복음 22,32) 그리고 바오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울아, 사울아, 왜
나를 박해하느냐?”(사도행전 9,4). 그분께서 우리에게
똑같이 하십니다. 그분께서는 성부 하느님 아버지 앞에서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시고 중재하심으로써 우리에게
당신의 사랑을 보증하시고 우리가 일어나서 여정을 다시 시작할 힘을 찾을 수 있도록 우리가 길을 잃을 때는 언제나 부드럽게 나무라십니다.
우리도 주님의 어루만짐을 받아 왔습니다. 우리도 해방되어져 왔습니다[자유로워져 왔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몇 번이고 반복해서 해방되어져야 합니다, 오로지 자유로운
교회만이 믿을 수 있는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같이 때때로 우리의 형편 없는 고기 낚음 앞에서 우리는
실패감에서 해방되라고 부름 받습니다. 우리를 마비시키고 우리를 우리 자신만의 안전 속에서 피난처를 찾게
만들고 우리에게 예언의 용기를 빼앗는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로워지라고 부름 받습니다. 바오로같이 우리는
위선적인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에서 해방되라고 부름 받고 하느님을 위한 자리를 마련하는 연약함보다 오히려 세속적인 힘을 우리 자신에게 주려고 하는
유혹에서 자유로워지라고 부름 받습니다. 우리를 완고하고 경직되게 만드는 광적인 종교성에서 자유로워지라고
부름 받습니다. 권력과의 미심쩍은 관계에서 해방되고 오해 받고 공격 받을 것이라는 두려움에서 자유로워지라고
부름 받습니다.
베드로와 바오로는 우리 두 손에 맡겨진 그러나 주님께서 성실하심과 다정하신
사랑으로 이끄시는 교회의 모습을 우리에게 물려 줍니다. 왜냐하면 교회를 이끄시는 분은 그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약하지만 그러나 하느님의 현존 안에서 강함을 발견합니다. 자유롭고
세상이 스스로는 줄 수 없는 자유를 세상에 주는 교회의 모습. 죄와 죽음으로부터 자유, 체념으로부터 자유, 그리고 그리고 우리 시대의 여성들과 남성들의
삶을 비인간적으로 만드는 희망의 상실과 부당하다[불평등하다]는
느낌으로부터의 자유.
오늘 이 기념에서 또한 그 후에도 우리 물어 봅시다. 우리의 도시들, 우리의 사회들과 우리의 세상은 얼만큼 자유가 필요합니까? 얼마나 많은 쇠사슬들이 떨어져 나가야 하고 오랫동안 닫혀진 얼마나 많은 문들이 열려야 합니까! 우리는 이 자유를 가져오도록 도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로지 우리가
먼저 예수님의 새로움에 의해서 우리 스스로가 해방되도록 놓아둘 때 그리고 성령님의 자유로움 안에서 걸을 때만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형제 대주교들은 팔리움을 받습니다. 베드로와의 일치라는 이 표시는 양떼들을 위해서 그의 목숨을 내어 준 목자의 사명을 상기시킵니다. 해방된 목자 자신이 그의 형제와 자매들에게 자유를 가져다 주는 도구가 됩니다.
오늘 또한 우리에게도 우리의 사랑하는 형제 바르톨로메오에게서 이 자리에 파견 받은 Ecumenical
Patriarchate로부터 온 사절단이 함께 합니다. 반가운 여러분의 참석은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을 불명예스럽게 갈라지게 한 거리감으로부터의 우리 자유의 여정에 대한 소중한 일치의 표시입니다. 참석해
주신 여러분께 감사 드립니다.
우리는 기도합니다. 여러분을
위해, 모든 사목자들을 위해, 교회를 위해 그리고 우리 모두를
위해. 그리스도께서 해방시켜 주신 우리가 온 세상에서 자유의 사도들이 되게 하소서.
(번역
2021. 7. 5 . 월요일 19:40)
강론이탈리아어원문 -> https://www.vatican.va/content/francesco/en/homilies/2021/documents/papa-francesco_20210629_omelia-pallio.html
강론 미사 사진 동영상 ->https://www.vatican.va/content/francesco/it/events/event.dir.html/content/vaticanevents/it/2021/6/29/pietroepaolo.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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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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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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