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화문] 제43회 '장애인의 날'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회사목담당 교구장대리 주교 담화문
관리자 | 2023-04-17 | 조회 603
제43회 ‘장애인의 날’ 담화문
기후위기에 취약한 장애인들의 안전한 삶을 위하여
찬미 예수님!
주님 안에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제43회 장애인의 날(4월 20일)을 맞아 특별히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열심히 살아가는 모든 장애인 형제자매들께 주님께서 강복해주시고 힘주시길 기도합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스스로 자신의 삶을 선택하고 생애주기에 맞는 복지 욕구를 충분히 누리며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장애인도 예외가 아닙니다. 장애인 복지도 더 이상 소극적 범위의 구제나 보호가 아닌, 국민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권리로서 체험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지구촌 모든 사람의 안전과 생명을 위협하는 ‘기후위기’에 있어서는 장애인들이 특별히 더 취약한 처지에 놓여있음을 살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난해 여름 수도권에 80년 만의 기록적인 폭우가 내렸습니다. 그날 서울 관악구 반지하 주택에 살던 40대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 3명이 건물침수로 고립돼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러한 기록적인 폭우가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와 관련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하고 있습니다. 한편 세계적십자연맹이 발간한 ‘2020년 세계 재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발생한 재난의 83%는 홍수, 태풍, 폭염 등 기상이변이나 기후 관련 자연재해였습니다. 17억 명이 피해를 입었고 41만 명이 사망했습니다(가톨릭평화신문 2021.1.28).
그런데 문제는 똑같은 자연재해라 할지라도 장애인은 비장애인에 비해 재난 사고에 더 많이 노출되어있고, 그로 인한 피해도 훨씬 크다는 점입니다. 갑자기 쏟아져 들어온 폭우를 피하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희생된 반지하 주택의 희생자들이 그런 사실을 잘 말해줍니다. 2018년 보험연구원이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화재 시 장애인 사망자의 비율은 57.4%에 달한다고 하였는데, 이는 전체 비장애인 사망자 비율인 12.1%보다 4배나 높은 수치입니다.
지체장애인을 비롯하여 청각, 시각, 정신, 발달장애인 등 장애 분류에 따라 위기와 안전에 대한 체감도는 각각 다르겠으나, 장애인이 그러한 위험에 노출되는 상황은 비장애인에 비해 생명에 위협을 받을 정도로 훨씬 더 심각한 수준입니다.
폭우나 폭설, 폭염 등 극도의 이상기후 환경에 노출될 경우, 휠체어를 이용하는 지체장애인은 장애의 특성상 비장애인보다 훨씬 심각한 불편과 위험을 감수해야 합니다. 장기간 외출을 하지 못하여 이동권의 제한이 생길 수 밖에 없으며, 지진이나 화재의 경우처럼 신속한 대피가 필요한 위급 상황에서 타인의 도움 없이는 사실상 대피 자체가 어렵습니다.
오늘날 기후 위기의 대응 방안의 하나로 적극 권장되고 있는 교통수단이 전기차입니다. 하지만 소음이 없는 전기차나 킥보드의 사용 증가는 시각장애인에게는 또 다른 위협이 될 수 있습니다. 청각장애인의 경우, 대기오염이나 코로나19 시기에 착용하는 마스크 때문에 의사소통의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발달장애인의 경우 기후재난과 같은 위급 상황에 스스로 대처하기 어렵다는 사실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현실에 직면하여, 기후위기에 취약한 장애인들의 안전한 삶을 위하여 국가의 맞춤형 복지제도와 그 실현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정부는 분야별 장애인 당사자들로부터 기후위기로 인한 당면 문제의 심각성을 파악할 필요가 있습니다. 기후위기에 취약한 처지에 놓인 장애인들의 다양한 의견과 요구사항 등을 사전에 청취하여, 기후위기와 재난 상황에서 안전하게 대응할 수 있는 실질적인 장애인 정책을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장애인들이 겪고 있는 다양한 심리·정서적, 경제적 문제까지도 파악하여, 그들에게 필요한 실질적인 맞춤형 지원(주거지원 및 생계비, 상담기관 연계 등 긴급지원)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총력을 기울여야만 합니다.
장애인의 날을 맞이하여 우리 그리스도인도 주변의 소외되고 어려운 이웃들, 특별히 재난과 위기 상황에 노출되고 있는 장애인을 찾아 관심을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장애인이 우리와 함께 사는 동등한 이웃이고 형제·자매이며 지역사회의 구성원이라는 인식을 다시금 확고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더욱이 기후위기와 재난 상황으로 인해 안전에 취약한 환경에 처해있는 장애인과 위기가구가 없는지, 본당 사회사목 분과를 비롯하여 사도직 단체들이 관심을 기울여 그들을 찾아내고 그들에게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각 본당 공동체는 장애인과 장애인 교우들을 향한 차별과 편견은 없었는지 성찰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장애인 교우들이 어려움 없이 교회 공동체 안으로 통합될 수 있도록 장애인을 위한 편의시설의 확충은 물론이고, ‘열린 사목활동’에 대한 지속적인 노력도 필요합니다. 열린 사목활동은 무엇보다 먼저 장애인의 눈높이에서 본당의 사목과 실천을 새롭게 성찰하도록 우리를 재촉합니다. 장애인의 위치에서 본당의 모든 일을 살핀다면, 그동안 ‘비장애인의 눈’으로는 볼 수 없었던 문제들을 알아볼 수 있고, ‘비장애인의 귀’로는 듣지 못했던 바를 알아들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 모두가 친환경적 실천으로 탄소배출 자체를 줄이려고 노력하는 것은 기후위기에 취약한 장애인들의 안전한 삶을 위한 보다 근본적인 대책에 보탬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노력에 동참하는 모든 형제자매 여러분께 주님의 강복을 빕니다. 장애인 여러분과 가족들 그리고 장애인의 권리 신장과 생활환경 개선을 위해 애쓰는 모든 사회복지사, 시설 종사자 그리고 봉사자 여러분께 부활하신 예수님의 은총과 복이 가득 내리시길 빕니다.
2023년 4월 20일
제43회 장애인의 날에
서울대교구 사회사목담당 교구장대리
주교 유경촌 티모테오